김용근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정찬용)는 평생을 역사서술과 민주언론을 통해 역사적인 인식과 시각을 정립해온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관장을 제 25회 김용근민족교육상 수상자로 선정하여 시상한다.
김용근선생 기념사업회는 스승의 날인 5월 15일 오전 11시 30분, 광주학생교육문화관(5·18기념공원) 김용근선생 흉상 앞에서 시상식을 거행한다.

수상자 김삼웅 선생은 근현대사 역사 학술작업에 오랜 기간 매진하셨고, 수많은 저술과 평전을 통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하셨으며, 독립기념관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단재 신채호기념사업회 부위원장,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등 사회활동을 펼치셨고, <대한매일> 주필로서 언론 활동에도 매진하셨다.
또한 2019년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3·1혁명은 ‘운동’이 아닌 ‘혁명’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논지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적확하게 펼쳐, 3·1혁명을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인식토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다.

저서로는 <한 권으로 보는 일제 잔재>,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 <3·1혁명과 임시정부>, <항일운동과 민족정신> 등 다수

행사에 앞서 11시부터는 제자들로 구성된 기념사업회가 독립유공자이고, 5·18민주유공자인 김용근 선생의 뜻을 항구적으로 기릴 수 있도록 사단법인 창립총회를 개최한다.

1994년 제정한 ‘김용근 민족교육상’의 역대 수상자는 윤영규 초대 전교조 위원장, 장석웅 전라남도 교육감, 채현국 선생, 우에무라 다카시 교수, 홍성 풀무학교, 극단 토박이, 로스엔젤레스 민족학교, 베를린 세종학교, 실상사 작은학교 등이 있다.

문의: 석은 김용근선생기념사업회 총무 김양래 (010-2613-2004)



김용근 선생기념사업회 및 민족교육상 제정 경위

석은 김용근 선생은 1917년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현산리에서 출생해서 평양 숭실학교에 유학하여 종교부장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연희전문학교 사학과에 다닐 때에는 일제의 탄압에 의하여 두차례, 3년여의 옥고를 겪었다.

해방이 되어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복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육군 제9사단에 입대하여 군무를 마치고 연희전문학교 동창으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었던 박병권 소장의 소개로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이후 전주고등학교, 광주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전남고등학교 등에서 역사교사와 농구부 육성을 겸하면서 후학을 가르쳤다.

은퇴 후로는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에 귀향하여 농사를 짓다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되어 찾아온 제자 윤한봉, 정용화, 김남표, 은우근을 숨겨주었다는 죄명으로 투옥되어 집행유예의 형을 받고 출소하였다.

선생은 1980년 계엄사령부 영창에서 얻은 심근경색증으로 1985년 5월 22일 소천하여 고향 선산에 안장되었고, 1997년, 가족들과 제자들에 의해 국립5.18민주묘지에 이장되었다. 선생이 타계하신 후, 1987년에 항일운동과 관련해서 독립유공자로 추서되고, 2002년 5·18민주유공자로 추서되었다.

선생의 5주기 추모모임에서 제자들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석은 김용근선생 추모문집’(편집위원장 황지우 시인)을 발간하기로 하여 6주기에 발행했다. 제자들은 계속해서 선생의 민족의 독립과 통일, 민주화를 위한 교육활동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뜻을 이어가기로 하고 선생의 가족들이 기증한 5.18 보상금의 일부, 제자들의 성금으로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2017년 10월, 기념사업회는 4천5백만원의 자체 예산으로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생의 흉상을 광주학생문화회관 앞 뜰에 모시고 선생의 문집을 다시 발간하였다.

1995년 석은 선생 10주기 추모식에서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첫 시상한 이래 매년 교육 등 사회활동가 1인을 선정하여 시상하였다. 상금은 300만원이며 재원은 기념사업회 매년 제자들의 기부 출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Top이동